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 이상진 위원장

“말 뿐이 아닌 진정한 노사 간 상생 아쉽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이 시대 최고의 과제”

지난 3월 10일 저녁, 이날 서울광장에서는 비정규직 문제와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한 “꽃들에게 희망을”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에는 쌍용자동차지부, 재능교육 콜트콜텍, KEC, 유성기업, 현대차 비정규직, 코오롱 노동자 등이 참석했고,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무대에 올라 그 열기를 더했다. 한편, 콘서트가 끝난 뒤에는 2004년 서울광장 조성 후 처음으로 텐트 노점 시위가 며칠 째 이어지기도 했다. “비정규직 철폐”나 “정리해고 없는 세상”은 각종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호이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 문제에 곪아있고 정리해고가 만연해 있다는 뜻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의 부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이에 본지는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해 오랜 시간을 투쟁해 온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이하 화학섬유연맹)의 이상진 위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짧지만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간 이날 만남에서, 취재진은 현재 우리 노동계가 처한 실태와 문제점을 생생히 들어볼 수 있었다. 

현재 노동 현장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역시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핵심입니다. 왜냐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같은 모든 문제가 다 비정규직과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정규직은 그런 고민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나라도 없는데, 통계를 보면 현재 상용직 근로자가 900만이고 비정규직이 1,000만에 육박했습니다. 이제 두 명 가운데 1명도 아니고, 길을 가다 정규직과는 부딪히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작업현장의 사고도 비정규직 문제와 연관됩니다. 특히 심야노동이 위험한데 얼마나 사람이 피폐해지는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저 역시 3교대 근무를 한 경험이 있는데 아주 미칩니다. 자기도 모르게 졸면서 일을 하는 것이죠. 그러다 사고가 일어납니다. 달나라까지 다녀오는 첨단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이유로 현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한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합니다. 지금도 매일 열 명의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고 있으니, 이것이 빨리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밤에는 자야 하는 게 사람입니다. 동물도 밤에는 자지 않습니까. 

4.11 총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 정치권과 노동계의 연대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일단 민주노총이 결정한 바대로 현재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출신 통합진보당 후보에 대해서는 당선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바로 야권 단일 후보입니다. 지난해 지방 선거 때만해도 민주당으로 야권단일화가 되면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중립을 지키는 입장이었는데 이것이 서울시장 재보선을 기점으로 달라졌습니다. 비록 민주통합당 후보가 민주노총을 대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같은 야권이기에 지지하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민주노총은 지난 13년간 줄곧 진보세력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고수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난해 진보정당 통합 과정에서 깨졌고, 지금은 배타적 지지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습니다. 4월 총선이 끝나면 이와 관련한 복잡한 사항들을 논의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과거처럼 기존 진보세력을 배타적 지지할 지, 아니면 훨씬 진보적 색체를 가진 새로운 단체를 지지할 지 결정하게 됩니다.
또, 한편에서는 차라리 민주노총당을 만들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진보정당 역시 노동자 중심의 의미가 많이 퇴색한데다, 민주노동과의 관계가 실제로 그렇게 매끄럽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과도기적인 의미는 있지만 이번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순번과 그 내에서의 노동계 포지션을 볼 때, 뭔가 많이 소원해졌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느꼈습니다.

“노동조합이 도리어 경영주와 회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은 제가 노동 운동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답은 명쾌합니다. 고용주의 입장을 노동조합이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이 나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윤을 창출하는 핵심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다수 경영주들은 사람을 중심으로 보지 않고 부수적인 소모품 정도로만 여깁니다. 말로는 상생을 외치지만, 저는 이 말 자체도 근본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고 봅니다. 다만 어느 접점에서 서로에 대한 양보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경영주들이 노동조합의 존재를 껄끄러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것이 투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시끄러운 일이 생기니 감추고 싶은 것이죠. 반면 우리 노동자들의 애로사항이나 산재 문제 등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최근까지 제가 경험한 모든 정리해고 투쟁을 돌이켜보면, 결과적으로 경영주가 사업을 못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직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만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희생을 감수하는 임금 삭감과 근로조건 후퇴와 같은 중재안을 여러 차례 제시했지만, 그것 역시도 기업들은 단 한 번도 받아 준 사례가 없습니다.
이렇게 노동조합에서 수세적으로 대안을 내도 그것들이 다 무시되다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힘 없는 노동자들은 자본에 무릎을 꿇고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 달, 1년, 그리고 10년을 버티겠습니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절실합니다.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그러나 세상의 변혁을 위해 가장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노동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 문화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진정한 상생의 실천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물론 교섭 테이블에서는 그런 얘기를 잘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희들로부터 양보를 잘 받아내기 위해서일뿐, 실제로 그 말을 실천하는 오너는 단 한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노동조합과 회사와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긴장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연구 자료도 있는데 긴장관계가 오히려 회사의 이윤 창출에 더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종업원들이 경영주에게 “우리가 노동조합을 설립했으니 교섭합시다”라고 하면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등하게 앉아서 교섭을 한다는 그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문화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서로를 인정하는 문화. 그래서 신뢰경영을 했으면 합니다.
또, 우리 기업가들은 여전히 종업원과의 관계를 수평이 아닌 수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안철수 위원장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이유는 그에게 성공한 기업가 이전에 양심 있는 착한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나도 저런 사장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묵시적인 보편적 심리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런 것을 보면 이제부터라도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방식은 버리고, 서로 대화로서 풀어나가는 열린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노사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첫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반대로 노동조합 역시 그동안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
우리나라 노동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거에서 현재까지 투쟁의 선봉장에 선 간부 대부분이 대기업 노조 출신입니다. 그런데 97년 IMF 이후 본격적으로 비정규직이 늘어나다보니 이분들이 상대적인 위압감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함께 근본적인 연대를 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습니다. 일부 대기업 노조의 경우 비정규직 문제에 소원한데다 오히려 비정규직의 해고가 자신들의 안전판처럼 여기는 이상한 문화까지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과거의 연대의식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의식들이 너무 희석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내부반성을 해야 합니다. 연대의식을 갖지 못하면 노동조합은 결국 어용화 될 수밖에 없고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남게 됩니다.
또 그동안 노동계는 수많은 투쟁을 해왔으나 단순한 노동계 현안을 뛰어 넘어 지역 사회의 여러 의제들을 돕는 데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폭넓은 연대와 아울러 소외된 약자들, 그리고 지역 사회운동도 꾀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변화를 선언한 바 있지만 결정적으로 실천이 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민주노총은 이것을 활성화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화학섬유연맹의 향후 계획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 기본권이 너무도 많이 후퇴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올해 단기적으로는 이런 현실을 되살리기 위한 전국 노동자 총 파업 투쟁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때문에 단순히 총선과 대선에만 기댈 수는 없는 것이고, 또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각종 노동 관계법이 재개정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직접 그런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민주노총의 80만 조직원 역시 대부분이 정규직 직원들이라 이들의 요구가 국민들의 관점과 눈높이가 달라 신뢰를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 노동계가 달라지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는 의미가 됩니다. 정치권 역시 다들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점조직 형태의 여러 조합들을 어떻게 규합할지가 관건이라 여깁니다. 또 조합원들과의 교감, 교육, 그리고 선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장기적인 계획은 바로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현재 노동계를 보면 어느 조직이든 모두 정체되어 있어 문제가 심각합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다 합쳐도 조직율이 9%밖에 안 됩니다. 거의 90%가 가입이 안 된 상태인데,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그 많은 노동자들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런 상태로는 대표성이 없다고 봅니다.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투쟁과 신뢰성 있는 사업으로 조직력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스웨덴처럼 노동자의 80% 이상이 조합원인 그런 나라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언론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은 대단한 정치적 격변기입니다. 1%에 대한 99%의 저항. 저는 이것이 그냥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전 세계적으로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넘기는 시기라 여겨지는데, 그래서 이제는 여당에서조차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파격적 제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도 자본의 권력이 국가의 권력을 이미 넘어섰다고 보는 것이죠. 자본이 너무 절대화되어서 점점 모든 삶이 피폐해지고 고착화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시장을 한 번 가보세요. 얼마나 장을 보기 어렵습니까? 그런데 임금 수준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또, 입 바른 소리를 하는 내부 고발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문화도 달라졌으면 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나서지 말고 중간만 가라고 배우고 자랍니다. 저 역시 부모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고, 또 나이가 들다보니 제 아이들에게도 그런 말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나서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역사가 그렇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나서는 사람이 있었고 또 희생을 당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세상이 온 것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이 사회가 불공평하고 잘못된 세상이라고 보지만, 그것을 제대로 제어하지도 규제하지도 못하는 식물 정부를 더 탓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 급진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봐도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태어날 때 이미 로또를 쥐고 태어난 재벌가 사람들과 달리 대다수 국민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태어납니다. 이들은 아무리 꿈꿔도 부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이미 재벌들이 사회 전반을 다 장악하고 있는데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차별과 억울한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는 정부와 노동조직이 되어야 한다. 우리 노동조합들도 이처럼 상식이 통하는 선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취재_김성훈, 박유나 기자